삶의 나침반
없다. 본문
어제는 내가 살고 지역에 있는 대학교들에서 학부생들이 참여했던 연구들을 서로 발표하는 학회가 한 지역대학교에서 열렸다. 학부생 두명에게 나와 여름에 함께 했던 과제를 제출해보라고 했고, 포스터발표를 하게 되어 나도 덩달아 참가하게 되었다. 워낙에 분야가 다양하고 (우후죽순) 해서,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를 찾아 프리젠테이션을 듣거나 포스터를 볼수는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들 모였고, 분위기도 일반 전문학회에 못지 않았다. 오후에 있었던 포스터세션에는 몸이 피곤해서 자세히 돌아보지도 못했을뿐더러, 나와는 많이 다른 분야의 일들이라 제목만 보고 지나갔다. 4시부터 시작된 두번째 포스터세션에서 나와 함께 참여한 학생이 사람들에게 그녀의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학회장을 나와 부지런히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토요일의 하루가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없다” 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돌면서 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꿈, 연구실에서 학생들과 연구일을 하며, 과제돈을 따 오고, 페이퍼를 내고, 학회에서 발표하고, 연구일이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보고, 뿌듯한 결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나의 막연하고 간절하던 내 삶의 모델은 신기루였고 실제는 ‘없는 것’ 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꿈을 통해 내가 바랬던 것은, 내 자신의 뿌듯함, 다른 사람들의 인정, 나의 독립성, 학생들을 부리는 지위 였고, 연구의 본질적인 면에는 내가 얼마나 끌리고 있는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겉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벗겨내고 나면 남아있는 것은 내가 갈망했던 것이었는지 선뜻 대답할 수 없었을때, 애초에 내가 갈구하는 것은, ‘없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인정, 보상, 명예는 내 삶의 특이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다 벗겨내고 연구에 대한 본질적인 것만이 남는 다면, 그것은 외부 조건에 의해 수행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내 자리에서도 보상이나 큰 결실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가려고 했던 길위에 실제로 서 있으면서도, 있지도 않았던 다른 길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엉켜있던 한 부분이 풀리는 것 같았고, 마음 한쪽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나의 이런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많은 능력과 부단한 노력으로 많은 일들을 해 내는 훌륭한 과학자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명예와 보상, 인정은 따라온다. 당연히 박수를 쳐주고 인정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꿈의 실제는 ‘없다’ 는 깨달음이 사실로 다가왔다. 무서운 인간의 정당화하는 논리가 나에게도, 내 머리 속에 일어난 것일까? 연구대학에 가지 못한 실력, 얼마 전에 신랄한 비평과 함께 돌아온 여름내내 신경써서 냈던 과제연구의 결과, 빈곤한 연구 아이디어, 바쁜 강의수업으로 인한 게으름, 에 대해 나를 자책함에서 나를 구해주려고 하는 내 머리속에서 얻어야 했던 구제방안이었을까?어떤 것이 하나님이 내리는 정답이라 할지라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해서 연구자로서의 진심을 지켜내고, 갈구하며 가는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으로 짓눌린 부담을 벗어내고 이 길을 갈 수 있게 된다면, 나로서는 진정한 깨달음이 될수 도 있을 것 같다.
‘없다...’ 마치 무슨 불교의 깨달음인 것 같은데, 없는 가운데, 각자의 인생에서 있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각자 인생에 대한 책임이고 가치가 아닐까. 보편적인 있음을 추구하라면, 대부분은 못할사람이 많지만, 보편적인 없음가운데, 있음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은, 대부분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사실은 ‘없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차를 몰면서 이런 느낌을 얻는 것 같은데, 작년인가.. 집에 돌아오면서 인생을 통해 갈구해왔던 질문,.. ‘하나님은 정말 계실까. 어떻게 그것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란 깨달음 얻게 되었다. 잘못이라는 것은 답이 애초에 없는 것을 질문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해 낼 수 있을까? 부재를 증명해 낼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신’이 아닐 것이다. 인생을 통해 갈구했던 질문이 애초에 없어야했던 질문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남아있는 것은, ‘믿음’을 통해 바라보고 믿음을 적용하며 살아내야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로 은혜를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다. 이겨내는 것이다. 보편적인 이해와 사랑과 화합으로 ‘믿음’을 갖는 것. 나의 특이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믿음’을 갖는 것. 인간으로서의 갖는 절대적인 ‘존귀성’을 인정하며 ‘믿음’을 갖는 것. 삶에 도움을 받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믿음’을 갖는 것. 그런 하나님을 그리고 그런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여기며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