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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면 보는 아이들과, 전도사님과, 아이들의 엄마들과, 아내와 함께 간만에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 것보다 더 아이들의 모습은 몇달 몇년사이에 부쩍 달라진다. 곧 교회를 이직하시는 전도사님을 따라, 이제 아내와 교회선생님일을 그만 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자기들의 세계에 몰입하여 순간 순간을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열정을 옆에서 계속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5년 1월초에 진웅이 진한이가 다 함께 모일 시간이 생겨서 가족여행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젠 아이들이 어디로 돌아다닐지, 어디서 먹을지를 미리 알려주고 안내해준다. 마침 이 사진을 찍은 날에 입었던 티셔츠는 원래 아버지의 옷이었는데, 수년 전 어머니가 오래 사시던 여의도에서 이사하시면서 버리신다고 한걸, 아내가 가지고 왔다. 평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여행지를 돌아다닐 때는 제법 어울리는 것 같다. 오래전 아버지도 그런 생각으로 이 옷을 입으신걸까.시간은 후다닥 후다닥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기억은 책장에 쌓아놓는 종이처럼 어지럽게 쌓아져간다. 거울을 봐도 내가 기억했던 나의 모습은 점점 없어지는 나이가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잘 살아내야 하는 삶의 의무감을, 오랜시간을 함께 해 왔던..

오래 전에 유학생활을 함께 하며 친하게 지냈던 장원이가 장기출장으로 내가 사는 근처로 오게 되었다.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함께 게티뮤지엄과 게티빌라를 함께 돌아다녔는데, 세계사에 해박한 사람과 함께 다니니 고대 유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로마 황제시대에 발행된 동전들과 로마황제들과 그들 자식들의 두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에서,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장원이는 다른 곳에서는 못 봤던 것을 봤다면서 너무 좋아해 했다. 나에게 현재 중요하고 간절한 모든 것도 시간의 역사 속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역사의 흔적을 보고 있는 순간에 함께 찾아온다. 잠시 허망한 생각도 들지만, 겸손한 마음과 함께 현재를 귀하게 여기게 된다.

마당 화분에 심은 조그만 나무의 가지에 벌새의 둥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두마리의 아기벌새가 있었다. 엄마벌새가 며칠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아기벌새들이 굶어 죽는 것 아닌가 염려했는데, 엄마벌새가 왔다 갔다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열흘정도가 지나자 아기새들이 부쩍 컸다. 그러더니 둥지가 작았는지 둥지 바깥으로 나와 있기 시작하더니, 다음날은 한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나머지 아기벌새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빈둥지만 결국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요즘도 가끔 빈둥지를 본다. 혹시나 여기서 살던 벌새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데, 아내는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그런다.

방문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오기 전날, 아내가 바늘과 실을 찾았을때 어머니가 어디선가 실바구니를 꺼내오셨다. 너무나 오랜만에 본, 그러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바늘을 꽂아넣는 바늘꽂이는 내가 아주 어릴때 인형처럼 만지작거리며 놀던 물건이었고, 원통용기안에 담긴 이런저런 모양의 단추들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어기며 반대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물건과 기억을 통해 현재가 과거를 만나는 순간은 있다. 시간에 묻혀 지나간 과거의 순간들이 늙으신 어머니가 꺼내오신 물건들에 여전히 묻어 있었다.

교회가 기리는 절기 중에 내가 가장 마음으로 함께하는 절기는, 예수의 고난주일과 그가 겪었을 참담한 고통과 절망의 시간후에 찾아왔던 부활주일이다.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부조리한 세상에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는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하는 힘이 되어 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다한 금요일 새벽, 아내와 함께 교회로가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아직은 어둡던 근처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올랐을까.. 대지에 그리고 하늘에 색깔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둡고 추워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해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것은 아름다운 아침의 빛으로 찾아왔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내 옆의 아내에게도, 그리고 산을 걷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빛이 뿌려..

올해는 나에게 주어진 짧은 봄방학시간을,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아이들을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심 자신들이 삶을 개척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진웅이와 진한이에게 힘과 위로를 주러 갔지만, 내가 직장에서 겪었던 억울한 일로 인해 낙담된 마음에 아이들로부터 '힐링'을 받고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의 짧은 여행을 '아이들 여행'이라고 이름부쳐 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가끔 함께 갔었던 월든호수 (Walden Pond) 를 진웅이가 사는 곳을 방문했을 때 다시 가 볼 수 있었다 (위). 형과 차로 5시간이상 떨어져 지내는 진한이에게도 방문을 했는데, 진한이가 다니는 학교의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주었다 (밑).

사십을 넘기고 어느때부터인가, 연말이면 사람들에게 보내던 종이/이메일 카드를 그만 두었다. 인생이 외로와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을때, 카드를 써서 보내는 일이 내가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기 보다는, 나를 기억해달라고 나의 존재를 알리는 간절한 손짓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게 되었을때, 카드 보내는 일을 내려 놓았다. 그후로는 연말에 누군가에게 받는 카드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올해는 특별한 카드를 교회의 세명의 꼬마아이들에게 받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서로 자매와 남매들인데, 언니는 스텔라 (단비), 여동생이 메이 (봄비), 그리고 그 밑에 남동생이 매튜 (시온) 이다. 항상 잘 웃는 그 예쁜 아이들이 예배실로 들어오면 실내가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교회선생..

한인교회 유초등부에 새로 오신 전도사님댁에서 금요일저녁에 가끔 아이들이 모여서 논다. 나와 소영이가 돕고 있는 유초등부를 방학을 해서 집에 온 진한이도 함께 도왔고, 그러는 동안에 아이들이 진한이를 많이 따랐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예쁜 모습 때문에 다 용서가 되고 만다. 가장 행복한시절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 옆에 있으면서, 그 아이들이 뿜어내는 밝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나는 자란다. 아니...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