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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I. 포항제이크와 함께 아침 일찍 포항으로 가는 여정은 힘들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 기차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제이크는 포항에 도착하면 그가 통과해야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40년동안의 제이크의 인생에는 친엄마, 친형제는 없었다. 아주 어릴때,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과 얼굴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그의 아빠 엄마가 되어준 사람들과 살게 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제이크의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그에게 매우 낯설은 땅이었고, 자기처럼 생긴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단지 그는 자신의 생명이 태어난 곳으로 점점 가까워져가는 기차에 그..

'언어'는 인간의 종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해 주는 큰 특징이다. 언어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로만 흔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언어없이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인식이나 사고는 언어가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주기때문에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하는 인식/사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초가 있어야 하며, 그 기초는 인식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는 무의식적이고 선험적인 무엇일 것이라고 말한다. 언어가 그런 기초의 한 부분이란 견해는 철학사로도 이어져 온다 [1]. 철학을 하는 사고는 언어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래서 언어의 구조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선험적인 인식의 기초를 들여다 볼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극단으로 가면..
밑에 간단한 덧셈 뺄셈의 급수 문제가 있다. 1 - 1 + 1 - 1 + 1 - 1 + ... = ? 이렇게 계속 1을 빼고 더하고 하면 (Grandi 급수) 결국의 값은 무엇이 될까? 위의 식을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1 - 1) + (1 - 1) + (1 - 1) + ... = 0 + 0 + 0 + ...값은 0 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1 + (- 1 + 1) + (- 1 + 1) + (- 1 +1) ... = 1 + 0 + 0 + 0 + ...남는 값은 1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값을 결정하지 말고 문제의 값을 T 라고 가정해 보자.T = 1 - 1 + 1 - 1 + 1 - 1 + ... 그리고 나서 양변에 -1 을 곱한다. 그러면 -T = - 1 + 1..

공부를 하다가 아무리 어려운 주제가 (수학적인, 과학적인, 인문학적인) 나오더라도, 만일 아인슈타인이나 니체 같은 천재들이 내 옆에 있어주면서 눈높이를 맞추어 가면서 끈길지게 설명해 주고 설명해주고 하다 보면, 나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아무리 어려워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지식들이나 개념들을 하나씩 겉으로부터 분석/분해해 가다 보면, 그 지식이나 개념을 뒷받침하는 다른 알맹이지식과 개념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들을 계속 분해해 가다 보면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결국 남는 것은 굳이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리, 논리법칙, 혹은 자연법칙일 것이다. 지식을 분해해 가는 과정에는 숙련된 방법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로직 (logic) 의 파괴는 창조의 세계를 열리게 한다." 동그란 원의 둘레길이는 원의 지름길이보다 3배보다 크고 4배보다는 작다. 정확한 비례관계는 파이 (π) 라고 불리는 상수로 나타내어지고 그 값은 약 3.14이다. 그러나 더 정확한 파이의 값은 3.1415926535897932384....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실수의 값이라고 한다. 이 값을 현재의 빠른 컴퓨터로 소수점 아래 22조자리까지 계산했지만, 무한개의 숫자에 비하면 22조개의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파이값을 계산해 낸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곤혹스러운 일은 어떻게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이 무한한 숫자로 남게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원은 분명히 평면상 실제하는 도형이고 둘레길이도 잴수..

꿈을 꾸었다. 그 꿈 안에서 나는 '시'를 적어야 했다. 무엇을 적을까.. 고민을 하다가 뭔가를 적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시가 머리 속에서 생각이 났다. 내 볼을 꼬집곤 했던 장난꾸러기 친구 못 그렸지만 내 그림이 더 잘 그려졌다고 선생님께 얘기해주던 친구 어느 추운 겨울날 고드름밑에서 자기 몸이 꽁꽁 얼때까지 날 기다려주었던 친구 어느날은 친구가 날 보고 웃지 않는다 날 보고도 어색하게 본채도 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은 내가 엄마 아빠랑 미국으로 떠났던 날 ... 헤어짐의 슬픔을 그렇게 나에게 건넸던 그 아이의 인사를 지금의 그리움으로 그에게 답한다 삶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그리워하는 과정이다.

어는 봄날 쉬는 시간을 이용해 풀과 나무가 보이는 바깥으로 나와 잠깐 앉아 있었다. 내 발 옆으로 조그마한 도마뱀 (lizard)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주 작은 몸집의 도마뱀이었고,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짧은 다리 끝에 있는 손가락 발가락들도 다리의 움직임들과 함께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것들이 저리도 유연히 움직일까? 현재의 발달된 기술로는 사람 몸집만 한 로봇을 만들어도 사람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게 힘들어 보인다. 도마뱀이 아니라도 아주 작은 곤충만 봐도 그렇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야 겨우 잘 보이는 아주 가는 다리들이나 날개들이 정말로 잘 작동하고 움직인다. 어떻게 저리도 작은 것들이 섬세하게 작동하는 것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나는 저것들..
몇주 전 부터 '지나'가 이상했다. 매일 자기 방에서 자던 지나가 이젠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얼굴도 내 놓지 않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밥도 잘 먹지 않는다. 살며시 들썩이고 있는 지나의 등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겨울만 견뎌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올라오는 계단에는 큰 하얀 벽이 마주보고 있다. 하얀 벽에 도달하고 나서 몸을 돌려 계속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층이 바뀌고 맞은편에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없는한은 엘리베이터를 탈일은 거의 없다. 어느 토요일날 텅빈 건물로 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