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나침반
'지나'의 죽음 본문
몇주 전 부터 '지나'가 이상했다. 매일 자기 방에서 자던 지나가 이젠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얼굴도 내 놓지 않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밥도 잘 먹지 않는다. 살며시 들썩이고 있는 지나의 등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겨울만 견뎌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들과 교회들 다녀와 옷을 갈아입고 방에 있는데, 소영이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내려와 봐... "
숨을 쉬며 그나마 움직였던 등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를 열고 손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꺼내 보았을때, 몸이 벌써 굳어 있었다. 그렇게 "지나"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기의 생명을 다하고 죽었다.
진한이가 자기 생일선물로 '햄스터' 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2년전 12월달에 조그만 종이 상자에 "지나"를 넣고 집으로 데려왔다. 태어난지 몇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한 손에 올려놓고 오므려도 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처음 샀던 케이지 (우리)는 왕성하게 움직이는 지나에게 너무나 작아서 나중에는 조금 더 큰 우리로 바꾸어 주었지만 그 조그만 햄스터는 언제나 우리를 벗어나려고 엄청나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바깥으로 꺼내어 동그란 플라스틱공에 넣어주면 집안을 마구 휘젖고 다녔고, 새벽에는 우리안에 있는 빙빙도는 기구를 타느라고 "끽끽" 소리를 내서 2층에서 문을 닫고 자야 할때도 있었다.
지난 2년동안 그 조그만 동물은 우리가 제공한 작은 유리상자에서 자랐고, 한때는 왕성하게 지내다가, 점점 활동이 눈에 띄게 줄다가 늙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아주 짧은 인간의 시간에 한 동물의 생명이 자신의 시간을 쭉 펼치고 지나갔다.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께서 최초의 인간들에게 준 죄의 댓가가 '죽음'인데, 사실 죽음보다는 '늙음'이 더 큰 죄의 댓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 어쩌면 죽음은 그 이후에 삶의 해방이 될 수 있지만, 늙는다는 것은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좋아지지 않는 반대쪽으로 향해 가는 것이고, 그 과정은 삶의 많은 한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심오한 순간들로 채워져 간다.
그러면 사람이 늙으면 다 성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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