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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마당 화분에 심은 조그만 나무의 가지에 벌새의 둥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두마리의 아기벌새가 있었다. 엄마벌새가 며칠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아기벌새들이 굶어 죽는 것 아닌가 염려했는데, 엄마벌새가 왔다 갔다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열흘정도가 지나자 아기새들이 부쩍 컸다. 그러더니 둥지가 작았는지 둥지 바깥으로 나와 있기 시작하더니, 다음날은 한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나머지 아기벌새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빈둥지만 결국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요즘도 가끔 빈둥지를 본다. 혹시나 여기서 살던 벌새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데, 아내는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그런다.

방문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오기 전날, 아내가 바늘과 실을 찾았을때 어머니가 어디선가 실바구니를 꺼내오셨다. 너무나 오랜만에 본, 그러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바늘을 꽂아넣는 바늘꽂이는 내가 아주 어릴때 인형처럼 만지작거리며 놀던 물건이었고, 원통용기안에 담긴 이런저런 모양의 단추들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어기며 반대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물건과 기억을 통해 현재가 과거를 만나는 순간은 있다. 시간에 묻혀 지나간 과거의 순간들이 늙으신 어머니가 꺼내오신 물건들에 여전히 묻어 있었다.

교회가 기리는 절기 중에 내가 가장 마음으로 함께하는 절기는, 예수의 고난주일과 그가 겪었을 참담한 고통과 절망의 시간후에 찾아왔던 부활주일이다.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부조리한 세상에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는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하는 힘이 되어 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다한 금요일 새벽, 아내와 함께 교회로가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아직은 어둡던 근처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올랐을까.. 대지에 그리고 하늘에 색깔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둡고 추워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해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것은 아름다운 아침의 빛으로 찾아왔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내 옆의 아내에게도, 그리고 산을 걷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빛이 뿌려..

올해는 나에게 주어진 짧은 봄방학시간을,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아이들을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심 자신들이 삶을 개척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진웅이와 진한이에게 힘과 위로를 주러 갔지만, 내가 직장에서 겪었던 억울한 일로 인해 낙담된 마음에 아이들로부터 '힐링'을 받고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의 짧은 여행을 '아이들 여행'이라고 이름부쳐 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가끔 함께 갔었던 월든호수 (Walden Pond) 를 진웅이가 사는 곳을 방문했을 때 다시 가 볼 수 있었다 (위). 형과 차로 5시간이상 떨어져 지내는 진한이에게도 방문을 했는데, 진한이가 다니는 학교의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주었다 (밑).

오래전 뉴스에서 어떤 삼성그룹의 임직원의 자살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회사내에서 일과 관련되어 있거나 아니면 사람들과의 권력관계의 스트레스로 인해 삶을 마감했다는 추청의 보도였다. 이런 뉴스를 볼때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회사내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삶이 무너질 정도라면, 그 회사를 나와 그 관계를 끊는다면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있었을텐데 왜 그 안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의 근육이 약해졌다면, 그것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정도의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표상적인 이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떤 공동체안에서의 일어난 사건이나 스트레스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