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나침반
떨리는 신뢰 본문
요즘엔 성공의 신학, 정상 고지론, 긍정의 신학 같은 것들이 신앙인들에게도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런 종류의 신앙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왕 하나님을 믿을바에야, 왜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살면서 힘들게 살게 하겠느냐? 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땅에서도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고, 세상의
어느분야에든 전두에 서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더 잘 발휘하라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전혀 틀림이 없는 맞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끄시는 성공과 고지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와는 (대부분 세상적인 영광과 복의 형식) 받드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극명한 예는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예수의 삶을 통해 들어난다. 예수의 삶은 기적을 일으키는 그의 신령한 능력과 사람들의 마음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그의 깊은 통찰력으로 말마암아, 사람들이 볼때, 그의 인생은 성공가두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사람의 영광을 포기해야 했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배신까지당하고, 결국엔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예수의
이런 순종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덧입혀지는 극적인 전환을 맡게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공, 고지에
올라서는 것, 긍정, 복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여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유일한
준거모델이 된다.
요즘 베드로전서를 읽게 되었는데, 베드로전서를 보면, 당시 신앙으로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베드로가 그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당부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특히 4장에서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난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처방안에 대해
말하는데, 적극적이란 의미는, 인내하고 참으라는 견지를 넘어, 그것에 동참하고 기뻐하라는 것까지이다 (긍정의 고난). 이렇게 할
수 있는 표징을 예수그리스도는 자기가 십자가에 죽는 고난을 받아들임으로서 신자의 마음 속에 각인을 시켜 주었다고, 베드로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박해를 받았던 베드로가 활동했던 초기교회시절이나 그리고 종교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현대사회나 다를 것 없이 '고난'을 가져다 준다. 사람들은 고난 이라고 하면 마치 외부에서 타의적으로 주어지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고난은 그 이상의 범위를 가진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평생 가슴 속에 담고 후회하며 살게 되는 인생도 고난일 것이고, 전쟁이나
사고로 사랑하던 사람들 한순간에 잃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전쟁터로 가서 싸우는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도, 죽음의 공포에 대한 괴로움으로 떨면서 지내는 전장의 삶은 고난스런 하루하루의
삶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믿는다는 것도 '고난'이며, 하나님안에서 성공과 고지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고난'이다.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신을 믿는다면 아마도 믿는다는 것이 왜 고난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을 신뢰하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가 지금까지 세상적으로 이루어가고자 했던 모든 부분들,
그리고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먹고 살려면 꼭 해야할 것만 같은 모든 부분에 대해서, 자기가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신뢰가 없다면, 굉장히 떨리고 무서운 상황들이다. 이럴 때는, 요정이 와서 자기를 구해줄 것을 믿고 있는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내자신이 정말 어리석게 느껴지고, 세상에서 나 혼자 바보처럼 서있는 것 처럼, 괴롭고 무섭고 외롭다. 사실은, 나의 신앙으로 인해
내 육체가 원하던 일들을 못하게 되었거나 또는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피곤해질 것이라는 이러한 일들때문에 무섭고 떨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떨리고 염려하는 것은, 세상적으로 뒤쳐지게 되더라도, 정말로 믿음안에서 끝까지 자기의 인생을
긍정하고, 끝까지 하나님과의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늘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혹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때, 좁은문으로 들어선 것이며, 뒤돌아 보지 않으려고
두려움을 맞대어 싸우며 신뢰하려는 인생은 떨리고 힘들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쩌면 이생에서의 '고난'스런 여정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런 때일 수록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위안과 소망을 얻는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참여라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다.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기뻐뛰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고 (4장 13절) 위로하고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바울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 라고 확신에 찬 당부를 하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베드로의 말이 혹은 바울사도의 말이 과연 믿을만 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이 그들의 인생의 말년에 신앙을
위해 죽음까지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면, 그들의 말이 좀 더 믿을만 하지 않을까?
- Therefore, let those also who suffer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entrust their souls to a faithful Creator in doing what is right (베전
4:19)
'Bible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것마저 나의 우상이라면 (0) | 2007.08.23 |
---|---|
Sign (싸인) (0) | 2007.08.20 |
사도행전1장 (0) | 2007.08.17 |
유다서 1장 (0) | 2007.08.09 |
요한일서 4-5장 - 연민없는 사람들 (0) | 2007.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