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Comments
Recent Posts
Notice
Link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삶의 나침반

마더테레사 수녀의 고백 본문

Bible 읽기

마더테레사 수녀의 고백

가을의 강 2007. 9. 6. 04:49

마더테레서 수녀에 대한  글을 뉴스위크지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녀가 인도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의 공허와 신의 임재에 대한 의심들을 적은 자기의 노트가 함께 소개가 되었다. 그런 의심과 번민속에서 테레사수녀는 일을 하므로 이겨내려고 하였고,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실망할 때 이상하게도 세상은 그녀를 이상으로 극찬하였다고 뉴스글은 마무리를 지었다.
요즘에 신앙에 대해 일반 세상 사람들 (신을 믿지 않거나 별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놀라웠다. 특히 피랍사건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내자신이 신앙인면서도 많은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왜 그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 이유를 떠나서라도, 일단 이러한 감정적인 대립의 원인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고 생각이 든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부분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준인 것이다.
이번 마더테레사에 대한 글들은 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 신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만을 세상사람들에게 줄 것인지, 아니면 테레사수녀 개인적인 문제로만 인식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나는 물론 그녀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을 한다. 사람들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믿는다는 것에는 의지적인 요소가 섞여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결단적 의지는 물론 선행과정이 있었다. 이런 선행과정에서 신이 각자의 마음 속에 어떻게 섭리하신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선행과정에 따른 각자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을 신의 개입과 함께 인식하기 시작하면 신앙의 길이 출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후에도 의심은 있기마련이다. 우리의 감각으로 느낄수 없기때문이다. 특히 테레사수녀같은 경우는 언제나 병들고 힘든 사람들만을 대하니 그 사람들을 대하는 신에대한 의구심을 들었을 수도 있고, 평생을 수녀의 신분으로 세상사람들의 기대수준으로 지내다 보니, 힘에 겨웠는지도 모른다. 고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자기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자각하는 일, 그리고 위용을 부리지 않는 것이 어쩌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생존본능에 위협이 느껴질 때,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것을 신앙으로 이겨낼려고 하지말고, 생존본능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ible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약함의 한계  (0) 2007.09.26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0) 2007.09.13
회개  (0) 2007.09.01
이것마저 나의 우상이라면  (0) 2007.08.23
Sign (싸인)  (0) 2007.08.20